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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나훈아

                          

        본명 : 최홍기(崔弘基)

        출생 : 1947. 2. 11,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직업 : 대한민국 아리랑 가수

        활동시기 : 1966~ 현재

        가 족 : 슬하 11, 22녀 중 차남

        소속사 : 나예소리



생애

나훈아는 1950211(언론 상 발표 출생년도와 차이 있음)에 부산에서 선원이자 무역상이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2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고 한때 경기도 의정부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다. 학창 시절의 나훈아는 노래를 좋아해 고향 뒷산에서 친구들과 함께 기타를 즐겨쳤다고 하는데, 나훈아의 지인들은 나훈아가 악기를 다루는데 능숙하고 그 중에서도 피아노 실력이 수준급이라고 밝혔다. 1965년에 형을 따라 서울로 상경하여 이후 서라벌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고교 2학년이 되던 해 나훈아는 오아시스레코드와 계약하여 천리길을 발표하면서 공식적으로 가요계에 데뷔하였다. 자신만의 독특한 간드러진 꺾기 창법이 매력적이었던 나훈아는 1968년에 발표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은 크게 히트하여 나훈아는 대중가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으며 1970년대에는 남진과 함께 라이벌 구도를 이루었고 대중가요를 주름잡았다. 남진과 나훈아는 1970년대의 가요계를 장악하면서 서로 경쟁을 벌여 보통 남진 아니면 나훈아가 가수왕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실제 방송사 기록을 보면 남진이 주로 1위와 동시에 가수왕상을 수상하였으며 나훈아는 주로 2위를 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나훈아는 남진과 함께 경쟁하면서 그 시기에 침체된 대중음악에 활력을 불어넣어 대중가요의 활성화를 이끌었다. 1970년대는 나훈아가 주요 히트곡을 동시에 발표하면서 남진이 발표하는 노래와 동시에 인기를 얻게 되자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경합이 펼쳐졌다.

나훈아는 남진과 달리 대부분 차분하고 조용한 노래를 선곡하였으며 당시 무대에서 다양한 포즈와 꺾기 창법으로 트로트를 불러서 중년층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의 인기를 알 수 있듯이 삼성전자의 회장 이건희의 연회에 참석할 것을 초청받았으나 나훈아는 자신의 공연을 보기 위하여 표를 사는 사람들에게만 노래를 한다며 단호히 거절하였다. 전성기를 한창 누비고 있었던 나훈아는 1972년에 서울시민회관에서 공연하던 중 한 남자에게 병 파편으로 피습을 당해 몇 개월을 입원하였다. 이 같은 소식을 들은 나훈아의 팬들은 남진의 팬이 나훈아를 다치게 했다는 루머를 믿고 서로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양측 모두 사실을 부인하면서 루머는 일단락되었다. 이후 나훈아는 건강을 회복한 뒤 1973년 비밀리에 공군에 입대하여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입대 직전 배우 고은아의 사촌인 이숙희와 결혼했다가 전역을 1년 앞둔 1975년에 이혼하였다.


1976년에 나훈아는 전역한 후 얼마되지 않아 영화계에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여배우 김지미와 결혼을 발표하며 큰 화제를 일으켰다. 그해 심수봉이 남산에 위치했었던 도쿄호텔 스카이라운지 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실력에 감탄한 나훈아는 심수봉에게 본명인 최홍기로 쓴 자작곡 여자이니까를 주면서 가수로서의 데뷔에 힘을 실어 주었다. 그리고 1977년에 애정이 꽃피던 시절이란 곡을 발표했는데 이 곡은 1974년에 작곡가 박성규가 가수 방주연에게 청혼하며 주었던 가사없이 멜로디만 주어서 방주연이 작사하여 발표한 생각해보세요라는 곡이 원곡이었는데 방주연이 청혼을 거절하자 박성규는 방주연에게 줬던 악보를 다시 가져가서 가사를 새로 지어 3년 뒤에 1977년에 나훈아에게 주었고 이후 애정이 꽃피던 시절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나훈아와 김지미는 김지미의 고향인 대전 신탄진동에서 신혼집을 마련하여 거주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방송에 출연하지 않던 나훈아는 1981년에 대동강 편지를 발표하면서 가요계에 복귀하였으며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하고, 1982년에 울긴 왜 울어를 발표하며 다시금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가요계 복귀로 인해 김지미와 사이가 나빠지며 1982년에 김지미와 이혼하였고 이듬해 가수 출신의 정수경과 결혼한 후 11녀를 두었다. 1984년에 조용필 다음으로 일본에 진출하여 데이지쿠레코드와의 계약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나훈아는 1980년대 후반에는 방송에 잘 출연하지 않았음에도 나훈아의 공연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방송에서 나훈아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명절 특집 프로그램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홍보와 마케팅에 집중하는 현대 가수들은 위험할 수도 있는 은둔 활동이라는 일종의 희소 가치는 그의 공연에 관객을 몰려들게 했고 그의 존재감은 전설로 상승했다. 또한 주로 서정적이면서 슬픈 로맨스틱한 본인의 자작곡들을 불렀는데 갈무리, 영영,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홍시가 대표적이다. 나훈아의 자작곡 중 1987년에 발표한 땡벌은 발표 당시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하였고 13년이 지난 2000년에 강진이 리메이크하여 발표하였는데 역시 발표 직후 인기를 얻지 못하였으나 2006년에 조인성이 비열한 거리에서 이 곡을 불러 화제가 되었고, KBS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에서 이승기가 극 중에서 어머니를 위로하는 곡으로 땡벌을 부르는 장면이 등장하며 인지도가 상승하게 되었고 2007921일에 방송된 KBS 뮤직뱅크에서 강진이 1위를 차지하며 땡벌은 발표된 지 20년 후에야 범국민적인 인기를 받았다.


나훈아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시대를 달리하는 끊임없는 히트곡 양산과 더불어 작곡과 작사 능력으로 싱어송라이터로 자리매김했으며 1990년대 초반 '한국 가요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데뷔 이후 현재까지 약 2500여곡을 취입하고 정규 앨범 19장을 포함한 200여개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나훈아가 직접 작사하거나 작곡한 노래는 약 800여곡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73월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예정된 콘서트가 갑작스럽게 취소되며 2006년 순회 콘서트가 나훈아의 마지막 활동이 되었고 이후 나훈아는 가요계에서 잠정 은퇴하였다. 그러나 2017년에 남자의 인생을 발표하며 11년만에 가요계에 복귀하였다.


■주요앨범

천리길/1966, 사랑은 눈물의 씨앗/1968, 님 그리워/1969 ~~~~~~덤/2006~~~~~~ Dream Again/2017.7.17


■대표곡

내사랑, 천리길, 약속했던 길, 사랑은 눈물의 씨앗, 강촌에 살고 싶네, 바보같은 사나이, 가지마오, 고향역, 물레방아 도는데, 인생길 나그네 길, 애정이 꽃피던 시절, 이별의 고속도로, 대동강 편지, 울긴 왜 울어, 18세 순이, 붉은 입술, 청춘을 돌려다오, 님 그리워, 땡벌, 무시로, 갈무리, 영영, 잊으리, 외로운 주말, 보이지 않는 사랑, 어매, 행복 찾기, 공항의 두 얼굴, 잊을 수가 있을까,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너와 나의 고향, 아담과 이브처럼, 모르고, 연락선, 고장난 벽시계, 남자의 인생 외 자작곡 800여곡 포함 취입곡 3,000여곡 


■대표 팬사이트

-나사모, 2001.11.4 창립

-나사모 사이트 주소 :  www.rok.co.kr

-나사모 네이버밴드 주소 : http://bandus/@rok

-나사모 상표등록 / 출원번호 40-2018-0011696 / 등록일 2018.11.5


■자료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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